모짜르트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7년 전인 1784년 28살이던 해, 프리메이슨에 가입하였다. 이는 전에 개인적인 작곡을 의뢰한 적이 있었던 프리메이슨 자비에 지부장 오토 폰 게밍겐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으나 사실 모짜르트는 훨씬 이전부터 프리메이슨과 연관되어 있었다.

11살 때 모라비아의 저명한 의사이자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던 볼프 박사로부터 천연두 치료를 받은 바 있었고, 12살 땐 역시 프리메이슨 회원이자 잘츠부르크에서 영향력있는 인사였던 메스머 박사의 정원에서 그의 첫 오페라(처음 상연된 오페라, 더 앞서 작곡하기로는 핀타 셈플리체가 있다) 바스티엥과 바스티엔느를 초연했으며(메스머는 자기치료요법의 발견과 심리학의 시초로 유명한데 모짜르트 부자와 절친했고 유리 하모니카를 잘 연주했다. 코지 판 투테에는 "~여기 이 자석이 여러분에게 보여줄거요, 한때는 메스머가 쓰던 자석으로~"라는 레치타티보가 등장하기도 한다) 17살 때 프리메이슨 출신 작가 게블러의 희곡 이집트 왕 타모스를 위한 음악을 의뢰받았던 것이다. 이 연극엔 프리메이슨의 의식과 사상, 상징물들이 등장하는데, 모짜르트가 본격적으로 프리메이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년시절 일 루미나티 지부의 모임을 목격하면서부터였다.
 

잘츠부르크 근처 호젓한 동굴에서의 비밀스런 회합- 모짜르트는 그들이 보여준 자유롭고도 낭만적인 분위기, 그들이 주장하는 우애와 박애의 이상, 신분 간의 차를 무시하고 음악을 중시함에 깊이 이끌렸다. 어릴 적부터 암호와 수수께끼를 좋아했던 모짜르트는 비밀집회와 그곳에서의 연주회, 신비로운 의식에 매혹될 수 밖에 없었고 가입 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프리메이슨의 인도주의적 원리를 신봉하였다. 모짜르트가 사망하던 해인 1791년 11월, 그가 완성한 마지막 작품인 프리메이슨 칸타타에는 먼저 언급한 것과 같은 신비로운 의식과 이념, 상징들로 가득차 있다. 프라하로부터 대관식 때 상연할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은 모짜르트는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서른 다섯의 생애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던 여행의 가장 마지막이된 프라하로 떠났고 이러한 무리한 여정 직후 바로 착수하였던 곡이 바로 프리메이슨 칸타타이다. 드높은 새희망 지부가 새 집회소를 연 것을 기념해 작곡된 이 프리메이슨 칸타타의 초연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나 청중의 환호 속에 맛보는 기쁨도 잠시, 그는 다시 급속으로 악화되어가는 병으로 시름하며 펜을 들어야했다, 마치 삶을 연장시키는 방법이 쉼없이 일에 매달리는 것 뿐인 듯, 그의 음악만이 그의 생명인 듯이. 모짜르트는 음습한 절망감에 휩싸여 자신의 벗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지 불안하군…난 이번이 마지막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네.”
 
그리고 11월 말, 의사로부터 시시각각으로 그를 찾아와 괴롭히던 졸도 증세와 점차적으로 팔다리가 뻣뻣해지는 증세가 도저히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최후 통첩을 들은 모짜르트는 의사가 돌아가고 난 후, 눈을 감은 채 제자 쥐스마이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죽은 듯 누워있었다. 그 곡은 몇달 전 두렵고도 신비로운 인상의 회색 남자가 찾아와 의뢰하고 갔던 레퀴엠이었다. 극한으로 치닫는 육체적 한계 속에서, 자신이 불러야만 하는 백조의 노래를 맺기 위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모짜르트는 혼수상태 가운데서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쉿, 이제 밤의 여왕이 b flat minor를 노래하려고 해… ”

오페라 마술피리에 출연 중이라는 환상 속을 헤메며, 밤의 여왕의 등장을 알리는 말을 되뇌이던 모짜르트는 짙어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이제 막 프라하에서 빈으로 건너온 마술피리의 상연이 저지되고 있다는 데에도 깊은 슬픔을 느껴야 했다. 황제 프란츠 2세와 재상 메테르니히의 탄압으로 프리메이슨 활동이 위축되면서 그의 오페라 상연도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짜르트가 대사와 무대장치, 음악- 그렇게 모든 면에서 프리메이슨적 특징을 새겨넣었던 오페라 마술피리는(숫자 3을 주목할 것!)  비밀결사를 방해하는 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인기가 더해갔지만 모짜르트는 이 화려한 성공의 날을 맞이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중세 장인 조합으로부터 시작해 장인 길드의 의식에 고대 종교 의식, 기사도 의식과 상징이 보태진 프리메이슨 결사는 쉽게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들의 참된 우정을 도모하고자 1717년 영국에서 처음 결성되어 1725년 프랑스로 전파된 뒤 자유와 평등, 박애의 이념과 결합해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국가의 권력자들은 프리메이슨에 적대적이기도 하고 우호적이기도 했지만 항상 가톨릭 교회의 입김으로 거센 제한 조치가 있어왔다. 모짜르트가 이들의 세상에 뜻을 같이한 까닭은 앞서의 이념 때문이기도하나, 무엇보다 이 단체가 음악에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음악이 회원 간의 단결과 좋은 생각을 전파시킨다고 믿어 음악적 상징체계를 사용했는데 입회하고자하는 회원이 지부의 문을 세번 두드리는 것 또한 이러한 예이다. 음악적 상징체계를 즐겨쓰며 이로써 암시를 주길 좋아했던 모짜르트는 프리메이슨에 기꺼이 무료로 작곡을 해주곤 하였다. 모짜르트는 하이든에게 프리메이슨 가입을 권유하고 자신의 아버지 레오폴트도 가입시켰을 만큼 열성적이었는데, 간혹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는 프리메이슨 친구들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하였지만 말년의 어려운 처지에서 도움을 청할 친구도 프리메이슨 뿐이었다.
 
모짜르트의 죽음에 대해 프리메이슨 회원들은 다음과 같은 짤막한 회고문을 남겼다.

“그는 우리 단체의 성실한 회원이었다. 형제애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넘쳤으며
 자비와 같은 대의의 실현을 위해 애쓰고 자신의 재능으로 형제들을 도울 수 있을 때마다
 진실하고 순수한 기쁨으로 벅차 기꺼이 도왔다, 모짜르트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Um 0:55 stirbt Mozart 5. Dez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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