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요즘은 읽었던 책을 되읽는다. 몇년 동안 뒤적이지 않아 네귀퉁이가 단정하게 달싹 붙은 책을 펼쳐보노라면, 내 과거의 단편이 마른 잎사귀처럼 고스란히 끼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사는 동안의, 살았던 동안의 생각은 서로 비슷한 길을 따라가는지 책과 책 속의 나, 그리고 오늘 나의 궤도는 겹쳐질 수 없는 나이테처럼 서로 조금 옆을 구르고 만다. 허리를 벽에 기대어 접고 눈만 나박나박 놀리면서, 나는 2004년의 어느 잠 오지 않는 밤 내 시선이 머물렀던 귀절을 발췌하여 쓰잘데기없이 소중하고 목마르기만 했던 2009년의 마지막 날에 부쳐 과분한 작별을 고한다.
고난은 죄를 씻어준다.
고난은 인생을 깨끗하게 한다.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든다.이마 위에 주름살이 갈 때마음속에 깊은 지혜가 생기고,살을 뚫는 상처가 깊을 때영혼에서 솟아오르는 향기가 깊다.평면적 세속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고난의 잔을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이다.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고난을 견디어 냄으로써 생명은 한 단계씩 진화한다.핍박을 받음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을 포용하는 관대함이 생기고궁지와 형벌을 참음으로써 자유와 고귀함을 얻을 수 있다.개인에게나 민족에게나 위대한 성격은 고난의 선물이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