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의― 에서 멜로디언이나 아코디언을 떠올렸다면 미안하다.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코드는 그보단 크다. 그러나 피아노의 직계 조상으로선 너무나도 아담한 그 몸체는, 두손으로 안아들거나 차 뒷자석에 태우고 어디론가 홀가분히 떠나기에 모자람없다. 정말 이걸로 괜찮은걸까 싶은 작달막한 나무상자 안에 조율된 정갈한 다섯 옥타브는 오래도록 잊혀졌던 비밀의 책장을 열어보듯 고아한 자태로 바흐의 에디션에 충만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 바흐를 연주하기에 무리없는 5 옥타브 반의 클라비코드.
일반 보급형은 3 옥타브 반~4 옥타브 정도로 이보다 음역이 좁았다.
칸틸레나를 위한 바흐의 스페셜
바흐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클라비코드을 이해하자면, 같은 바로크 원전악기인 쳄발로와 비교하면 빠르다. 피아노에서처럼 타현이 아닌 현을 뜯는 작용으로 소리를 얻는 발현악기인 쳄발로는 현악기를 닮은 화려하고 쟁쟁한 음색을 지녔지만, 한편으론 무신경하기 그지없다. 피아노는 연주자가 건반을 얼마나 세게 치느냐에 따라 해머가 작동하여 소리의 강약변화를 만들어내지만, 그 기능원리가 아예 다른 쳄발로는 이러한 타건의 세기와 깊이에 의한 기본적인 셈여림조차 표현해낼 수 없다. 더군다나 손끝이 건반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울림이 끊기는 레가토에의 한계는 후에 오르간과 하프를 모방하여 계량된 어떤 장치로도 극복되지 못했다.

바로크 원전악기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쳄발로.
영어권에선 주로 하프시코드, 프랑스에선 클라브생으로 불뤼운다.
반면 피아노와 발음원리가 같은 클라비코드는 연주자의 감각과 사고와 그 호흡을 같이했고, 크레센도와 디미누엔도로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악상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건반악기 사상 최초이며 유일한 특성인 비브라토―건반을 누른 상태에서 음정을 바꿀 수 있는―는 현대의 프리페어드 피아노(현 사이에 종이를 끼운 엉성하지만 기발한) 이상이었다. 바흐는 이런 클라비코드를 몹시 사랑했고,「거의 유일하게 칸틸레나를 실현할 수 있는 악기」라 칭송했다. 하지만, 바흐로부터 거진 천상의 악기라 찬사받은 이 클라비코드에게서, 육중한 피아노와 같이 누르면 튀어나오는 정확한 음정과 죽어라 쳐대도 끊어지지 않을 듯 강력한 고음부의 반동, 건반과 해머의 묵직함, 스타카토와 글리산도에 반응하는 강렬하고 화려한 액션과 스포르찬도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꾸밈없이 솔직한 클라비코드는 연주자에게 기대한다. 잔인하리만치 극도의 정확함과 섬세한 터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클라비코드 장인의 비브라토 시연
연주자의 타건에 극도로 예민한 클라비코드의 구조는 미세한 셈여림의 변화, 연주자가 처리하는 프레이징의 단락, 세세한 떨림과 망설임, 숨결 하나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소리로 반영한다. 하이든의 무심한 연타 또는 모짜르트의 포르티시모 패시지의 요구사항을 클라비코드에게 전달해본다면, 곧 이 가냘프고 청순한 악기는 고통스런 쇳소리를 낸다. 순간순간 적절한 압력이 가해져야만 하는 이 악기의 건반을 포르티시모에 걸맞게 패버리면, 현과 탄젠트(피아노에서의 해머)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음정이 흐트러지고 마는 것이다. 음정과 아티큘레이션을 지배하느냐의 관건은 빠른 패시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건반악기 가운데서 가장 터치를 익히기 어려운 악기, 바흐는 건반악기를 위한 교재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클라비코드를 잘 연주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건반악기들도 잘 연주할 수 있다.”
잘생긴 연습용 클라비코드 (The Paris Workshop)
첫악기가 피아노인 사람이 클라비코드의 터치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몹시 어렵다.
하나의 현과 하나의 건반
마치 요정의 세계 같은 이 악기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클라비코드라는 이름도 현(chord)과 건반(klavir)의 결합에서 유래한 것이다. 클라비코드는 쳄발로, 피아노 포르테와 모던 피아노에 비해 훨씬 적은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반악기 가운데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과거로 거슬러 갈 수록 악기의 구조 자체는 단순하고 명료해지지만, 재료와 부품을 다듬고 만드는 방식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클라비코드는 보통 1:1:1로, 하나의 현에 연결된 하나의 건반에 한개의 탄젠트가 작용하지만, 두개의 현을 하나의 탄젠트가 맡은 더블프렛 형태도 있다.
현과 이를 지탱하는 브리지와 핀, 조율 핀, 현을 치는 탄젠트(청동 또는 황동), 댐퍼 펠트 등을 제외한 클라비코드의 거의 모든 주요부분은 나무로 제작된다. 잘 건조되고 결이 적합한 나무를 자르고 조각하여 건반과 공명판, 몸체가 되는 상자를 만든다. 직사각의 몸체 상자의 오른쪽 끝 트레블에는 공명판과 조율 핀이 있는데, 조율 핀에서 출발한 현들은 왼쪽 베이스의 히치 핀에 수평으로 연결된다. 건반을 누르면 지렛대처럼 연결된 탄젠트가 조율 핀과 브리지 사이의 현을 때려 진동시켜 음이 발생되고, 건반에서 손가락을 떼면 탄젠트가 원위치로 복귀하며 베이스 쪽 현들 위로 걸쳐진 두꺼운 펠트 끈이 단음 역할을 하여 소리가 멎는다.
14세기 후반부터로 등장했으리라 추정되는 클라비코드는 우선적으로 쳄발로나 버지널에 비해 제작이 쉬웠기 때문에 바로크 시대 각 가정에서 널리 보급된 친밀한 악기였다. 현과 내밀한 접촉을 갖는 클라비코드 특유의 성질은 뚱탁하고 무신경한 쳄발로보다 투명하고 분방한 표현을 가능케했고, 이는 음악의 교육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바흐의 2,3성 인벤션과 평균율 클라비어를 비롯하여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많은 작품들이 클라비코드를 기본으로 쓰여졌다.

베르메르가 그린 클라비코드를 연주하는 여인 (부분)
클라비코드의 거듭된 계량은 피아노 포르테를 걸쳐 모던 피아노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졌지만, 클라비코드 자체는 역사의 뒤안으로 멀어졌다. 현재 클라비코드의 자리는 쳄발로에 비해 너무나 미미하고 협소하다. 고음악으로 유명한 트로싱엔에도 클라비코드에만 집중한 전문가 과정은 없다. 흔히 지적하는 것은 음량의 문제다. 이 어여쁜 클라비코드의 음량은 매우 작아서, 아주 조용하거나 좁은 공간이 아니면 연주회를 가지기 어려웠다. 덕분에 음악을 배경삼아 웃고 떠들던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음악 감상 방식에서 이미 조금 더 음량이 큰 쳄발로에게 클라비코드는 그 자리를 내주어야했고, 19세기에 이른 군대사열을 연상케하는 부동침묵의 청중을 거느린 초절기교 비르투오조의 등장은 클라비코드를 구식의 유물로 전락시켰다. 수많은 피아노를 망가뜨리며 청중들의 갈채를 받는 화려한 비르투오조가, 소박하고 연약한 클라비코드를 선호할 까닭이 없었다. "2999명의 청중에 둘러싸여 명상을 해야하는" 현대의 연주회도 그건 마찬가지여서, 오늘날 클라비코드 연주는 거의 통조림으로 유통된다.

페달 클라비코드, 모짜르트 때에 이미 페달장치가 고안되었지만, 모짜르트는 자신의 희망과는 달리
페달 클라비코드를 써보지 못했기에 그의 작품엔 페달링 표시가 없다.
품에 안고 싶은 건반악기, 클라비코드
연습용의 좁은 음계가 아닌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기 좋은 클라비코드는 6000~7000유로 정도다. 글 제목을 바꿔야한다. 물론 뵈젠도르퍼나 파지올리 피아노가 웬만한 전세와 집값을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지만, 제작에 극악의 난이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배춧잎이 많이 필요하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라비코드 제작에 종사해서 클라비코드를 부흥시켜야 옳겠으나, 그리 수요가 좋지 않기에 가격이 저 모양이다. 클라비코드는 주로 쳄발로 공방에서 장인의 세심하고 특별한 주의 하에 수제작되지만 그나마도 주문생산된다. 대신 조립형 키트는 잘 찾아보면 몇달 식비를 모으는 정도 선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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